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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꼬물락꼬물락/미모의 손글씨

세기의 미녀 마릴린 몬로


다른 모든 여자와 다르지 않았던, 단지 더 가난하고 더 강하고 더 외로웠던 여자. 마릴린 먼로

 

192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생, 본명은 노마 제인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입니다.

 

마릴린의 어머니는 마릴린을 임신했을 당시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그 후 문란한 생활로

 

마릴린은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나중에 양부모에게 맡겨졌으나 버림받았습니다.

 

모델 시절, 누드사진을 계기로 1948년 영화 Scudda-Hoo! Scudda-Hay!에 첫 출연.

 

1950년 영화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에서 인정을 받았고

 

1953년 영화 나이아가라(Niagara)에서 주연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금발과 푸른 눈에서 발산하는 그녀의 매력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올려 놓았죠.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으로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돌아오지 않는 강(1954).

 

7년 만의 외출(1955). 아마 이 영화의 제목을 모르더라도 지하철 통풍구에서

 

마릴린 먼로가 매혹적으로 하얀 치마 자락을 날리는 장면은 거의 알고 계실 거에요.

 

그런데 이 장면을 찍는 과정에서 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각선미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구두를 고집했다고 합니다. 왕자와 무희(1957).

 

버스 정류장(1956). 뜨거운 것이 좋아(1959). 황마(荒馬)와 여인(1960)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극작가 A. 밀러를 포함한 세 번의 결혼 실패 등 여자로서의 삶은 


배우로서의 삶처럼 평탄하지 못했는데요. 우리가 마릴린 먼로의 사랑하면 떠올리는 사람은 케네디지만

 

정작 마릴린이 사랑했던 남자는 조 디마지오였습니다. 그러나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죠.

 

정숙한 여인을 바랬던 디마지오와는 달리 마릴린은 앞에서 언급했듯 미국의 최고 


섹스 심벌이었기 때문에 이런 마릴린을 참을 수 없었던 디마지오는 마릴린과 결국 이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둘은 여전히 사랑했습니다. 겉은 무엇보다도 화려하지만 속은 겉모습만큼 화려하지 못한 


할리우드 속에서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1년 반을 장차 케네디가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망상과

 

하루 중 절반을 혼수상태에 빠트리는 심한 약물 중독으로 보냈고,

 

마릴린의 평생의 사랑, 평생의 연인 조 디마지오와의 두 번째 결혼을

 

불과 3일 앞두고 마릴린 먼로는 마침내 자살로 보여지는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먼로가 죽고나서 조 디마지오는 그녀의 장례식을 자신이 직접 치루고 


매일 그녀의 무덤에 있는 꽃을 갈아줬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먼로의 생에는 행복없이 비참했으나 


조 디마지오가 있었기에 화려했다' 라고 말들을 합니다.

 

 

 

 

 

 

상업 미술에 회화적 요소를 첨가하여 성공을 거둔 화가 앤디 워홀을 아세요?

 

위의 그림의 제목은 <마를린 먼로 1967> 입니다.

 

마릴린 몬로는 잘아시다시피 대중문화, 팝을 대변합니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여배우인 마를린 먼로를 미술작품에 채택함으로써

 

앤디 워홀은 새로운 팝 아트라는 분야를 개척한 것이지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지구.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볼(Hollywood Bowl)

 

이라고 불리는 1919년에 건설된 유명한 야외극장과 그리피스 공원에 있는 연극 원형극장

 

콘크리트 앞뜰입니다. 사진은 1953년 6월 26일에 찍은 마릴린 먼로의 손과 구두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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